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그러나 그 둘은 경쟁자들을 이러한 문제로 처벌하지 않았다.12·12쿠데타 단죄와 하나회 척결로 영남 TK에 기반을 둔 정치군부를 퇴출시킴은 물론 쿠데타 세력의 정점에 있던 두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였다.
5·18특별법 제정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과 위상을 확고히 한 것도 김영삼 정부였다.오늘의 시점에 민주화를 이룬 대전환기의 몇몇 핵심 단면과 유산을 돌아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지금 우리는 극단적인 진영대결과 승자독식 민주주의의 망국적 폐해를 절감하고 있다.
내각제 합의와 파기가 대표적이었다.거대한 규모와 정보력.
정치적 경쟁자를 억압하고 처벌하는 대신.
정치군부의 전격적인 제거와 쿠데타 세력 처벌을 통한 나라의 문민화.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근대적 지식인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민주주의적 개혁의 길이 아닌 군국주의의 길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했고.
그러나 과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는지 의문이다.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