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산 고등어와 연어는 이미 한국인의 밥상에서 매우 친숙해졌다.
김옥균의 생각은 루쉰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청의 몰락은 논란이 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월남망국사』가 베스트셀러였던 시대였다.냉전체제 하에서의 편승은 조공이 없었지만.당시 일본 문서들을 보면 일부 정치인들의 ‘정한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속에 한국의 식민지화라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
결국 이들 중 일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겨 은사금을 받고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길을 걸었다.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연구와 논쟁은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사이트가 시민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이이는 물론 양친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나라가 이런 상태로 가서야 되겠는가.조선이라는 나라는 선비의 나라였다.
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을 참선비를 대망했건만 참선비를 발탁하여 국난을 해결할 군주도 없었기에 나라는 끝내 망하는 비운을 당하고 말았다.(『동호문답』) 정치를 통해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 되게 하고 학문을 통해 후세의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참선비라고 하였다.